[기획 연재]아버지의 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김소정 승인 2017.09.01 14:57 | 최종 수정 2022.06.17 06:00 의견 0

일기日記를 펼치면서

어릴 때 혼자 골방에서 꺼내보던 아버지의 일기가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한문이 많아 띄엄띄엄 읽다 만 일기를 가슴속에만 간직하고, 어른이 되면 다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이제껏 미루어 왔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번역하여 아들과 조카들에게도 아버지의 일기를 읽게 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이제서야 ‘공갈못 연밥사랑방’에 올리게 되어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족 이야기를 다 공개해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 당시 1951년 6·25전쟁 상황중의 19세(미혼)에 이런 일기를 남겼다는 사실을 저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일기에는 단지 아버지 개인사만이 아닌, 65년 전의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들어 있어,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어떤 사명감 때문입니다.
글, 글씨, 그림, 음악 등 뛰어난 예술가로서, 시골학교 선생님으로서 짧은 삶을 살다 간, 한 사람 한 지식인의 고뇌와 번뇌를 오늘의 우리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버지의 일기를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한 뼘 정도의 두꺼운 일기장이 이제는 세월의 흐름 속에 다 떨어져 나가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남아 있어 안타까움을 품은 채 ‘아버지의 일기’를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아버지의 일기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아버지들의 일기이기도 합니다.

2017.9.
아들 이윤한 드림

아버지의사진.jpg
▲ 글쓴이 이점술(李点述)
아명은 수만(水萬)으로 1932년 경상북도 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789번지에서 태어났다. 1947년 공검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함창중학교 재학시에 초등교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후, 상주중학교부설 초등교원 사범과를 졸업하고 공검국민학교에 재직하였다. 1962년 30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아버지의 일기를 펴낸 이윤한의 아버지다.


약 력
1947.07.17 공검국민학교 졸업(3회)
1950.04.08 경상북도 시행 초등교원 채용시험 합격
1950.05.12 함창중학교 졸업
1951.07.28 상주중학교 부설 초등교원 사범과 졸업
1951.10.31 준교사
1951.10.31 함창남부국민학교 재직
1952.11.30 공검국민학교 재직
1953.07.01 준교사 자격증 취득
1955.04.17 2급 정교사 자격증 취득
1958.08.19 내서서부국민학교 재직
1961.06.05 사직
1962.02.04 폐결핵으로 요절(당시 30세) (음력 196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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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엮은이 이윤한(李潤漢)
1979년 상주시청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수원시청 재직시에 만학의 꿈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구조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청에 재직중이다. 6.25전쟁 상황, 사범과재학중 열아홉 살이란 나이에 쓴 '아버지의 일기'를 어릴적부터 소중히 보관하여 왔으나, 혼자만 간직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워 인터넷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65년 전의 생활상과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글, 글씨, 그림, 음악 등에 뛰어난 예술가로서, 시골학교 선생님으로서 짧은 삶을 살다간, 한 지식인의 고뇌와 번뇌를 오늘의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으로 엮게 됐다.




아버지의 일기 (1)
1951년 1월 4일 목 맑음
앞문을 열고 보니 바로 보이는 국사봉 푸른 소나무, 막 솟아오른 한줄기의 햇빛을 얻어 그 푸른 절개를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 일찍이 일어난 어린 동생들, 아침 찬바람에 밥을 짓느라 추위를 무릅쓰고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들에게도 몹쓸 운명으로 따뜻한 '어머니' 잃고 오직 낯선 타향에 와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생각 금할 수 없다.
나는 '어머니' 별세 후부터 아무 중심이 없고, 넋을 잃은 자와 같이 이리저리 맹목적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고독에 쌓인 하루의 일과를 무심히 보낸다.
오늘은 매우 따뜻한 날씨로 앞 학교의 운동장에는 방위대원 훈련연습을 하는 모습이 씩씩한 한편, 또한 정신이 썩어 빠진 자들과 같이 보인다.
진종일 옛 시조집을 벗 삼아 독서하는 중, 벌써 높푸른 하늘에는 아기별들이 숨바꼭질하기에 바쁜 듯이 깜박깜박 반짝이고 있고, 밤에는 심심하여 영연 댁에 가서 메주를 디디주고 와서 곧 일기장으로 붓을 옮긴다.
(영남연합뉴스=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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